Cultural Heritage
since 2010

돈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돈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돈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돈암서원은 1634년 건립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제와 결합된 강학 건축물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강당인 응도당은 다양한 의례 행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한국의 전통건축과 예학 이론을 결합하여 완성한 건물로 구현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19세기후반 한차례 이건된 바 있으나, 당시의 이건상황이 세세하게 기록된 자료를 통해 진정성와 완전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사항을 증명한다. 이건 과정에서 서원의 원래 입지와의 유사성을 고려한 입지 선정을 통한 노력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이건 과정에서 전통 건축기술의 전승을 이루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제자들과 논산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돈암서원은 한국적 실천예학과 한국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禮學) 논의의 산실이었다. 예학이라는 성리학의 이론이 특화되었다는 점은 한국 성리학이 획일적으로 연구된 것이 아닌 특정 분야를 토대로 다양하게 발전되어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각 건축물의 현판들은 성리학적 예(禮)와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과 장서 등 대부분의 기록물들도 예학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 돈암서원에는 많은 목판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예학과 관련된 이론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돈암서원의 주요 제향인물은 김장생(1548-1631)이다. 김장생은 17세기 조선의 예학 연구를 선도해간 사림으로서 그의 견해는 중앙정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김장생의 제자들은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특정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이후 중앙정계의 핵심적인 인물들로 주요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학은 전쟁으로 피폐된 국가의 질서를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중시된 성리학 주제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후 김장생의 제자인 김집(1574-1656)은 1659년에, 송준길(1606-1672)은 1888년에, 송시열(1607-1689)은 1695년에 추가로 배향하였다. 돈암서원에 배향된 모든 인물들은 예학 이론을 구체화하는 저서들을 작성하였으며, 이후 서인 학맥의 형성 과정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성리학의 특정 분야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돈암서원은 충청남도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서 지역의 공론과 학문을 주도해갔다. 충청남도 지역의 많은 서원들은 김장생과 관련된 문인, 제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따라서 돈암서원과 건축물이나 교육 방식, 연구 경향 등에서 유사한 점들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은 충청남도의 중심 서원으로서 돈암서원의 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학과 관련된 돈암서원의 학술 특성은 제향인물인 김장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장생은 17세기 전반 예학을 집대성하여 사회에 보급한 인물이다. 따라서 돈암서원은 예학의 완성을 상징하며, 조선시대 예학의 거점이자 지역 학맥의 거점으로 역할하였다. 예학과 관련된 토론 문화가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 지역에서 활성화 되었다. 돈암서원의 건립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예학과 관련된 논의가 점차 심화․발전되었으며, 예송논쟁과 같이 국가 정책의 주요 이슈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를 토대로 돈암서원의 인물들은 김장생을 제향하며, 이러한 전통은 문중과 유림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돈암서원의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제향시설로 사우 숭례사와 전사청이 있다. 강학시설로 강당 양성당, 응도당과 재사 거경재, 정의재가 있으며, 정회당, 경회당, 장판각이 있다. 이 중에서 양성당과 정회당은 제향인물인 김장생이 생전에 강학 및 성리학 연구를 했던 건물이며, 응도당은 김장생의 예학 이론서에 수록된 것을 김장생의 사후 제자들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교류 및 유식시설은 산앙루가 있다. 이외에 서원 내외부에는 김장생 및 돈암서원과 관련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돈암서원은 예학 실천공간으로서 서원 형식을 크게 혁신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강당 응도당이다. 응도당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면, 측면 2칸 모두 8자로 동일하게 계획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서원 강당 건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응도당 상부의 목조 공포는 경쾌한 디자인으로 둔중한 응도당의 형태를 보완하고 있다. 응도당의 설계는 제향인물인 김장생에 의해 기획되었고, 그의 예학 관련 저술인 󰡔가례집람󰡕에 관련 사항이 도면과 함께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응도당은 건립된 이후 예학논의의 산실로 기능하였다. 예학과 관련된 토론, 저술활동은 응도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어갔다. 현재 돈암서원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자료들은 응도당에서 작성된 것들이다.

돈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돈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돈암서원은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해 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金長生) 생전의 강학처인 양성당에서 발전하였다. 김장생은 1602년 양성당을 건립하고 강학활동을 하였다. 1631년 김장생이 사망한 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1632년 지역 사림들의 발의에 의해 서원 건립이 추진되어 1634년 건립되었다. 이때 양성당 옆에 사우를, 사우 앞에는 강당을 짓고 ‘응도(凝道)’라 이름하였다. 건립 당시 제향의례를 비롯한 서원의 운영규정은 김장생의 제자였던 송시열, 송준길에 의해 제정되었다.

돈암서원이 건립된 후, 응도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학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관련 저술들이 출판되었다. 1646년에 󰡔의례문해󰡕, 1648년에 󰡔상례비요󰡕 등 김장생이 저술한 예학서들이 교정되어 간행되었으며,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강론이 진행되었다. 이후에도 김장생의 저작들은 돈암서원에 의해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김장생의 예학을 완성한 김집(金集)을 1659년 추가 배향하고, 1688년과 1695년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들은 모두 17세기 전반한국의 예학이론의 주류를 형성한 인물들이었다. 예학과 관련된 이들의 견해는 당시 정부에서도 이슈가 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659년에 ‘돈암(遯巖)’으로 사액을 받았는데, 이 또한 당시 제향인물들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돈암서원은 홍수로 인하여 1881년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다. 당시에 응도당을 이건하지 못하여 김장생이 강학처인 양성당을 강당으로 하여 서원의 형태를 구성하였다. 이건 사유와 과정을 기록한 돈암서원 이건비(遯巖書院移建碑)를 보면 당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대가 오래 지남에 따라 산천이 바뀌어졌는바, 시냇물의 흐름이 바뀌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형세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림들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1880년에 다시금 거기에서 남쪽으로 1리 떨어져 있는 호계(虎溪)의 언덕에 터를 잡아 새로 지었는데, 이곳 역시 선생이 예전에 오가던 곳이다. 새로 지은 사우의 재목은 옛 사우의 재목을 실어다가 썼으며, 그 나머지는 바꾸어서 고쳤다. 사우를 지은 제도는 한결같이 옛날의 규모대로 하여 당(堂)과 도(塗)와 문(門)과 숙(塾)을 조금도 차이 나지 않게 하였으며,……”

이건비는 서원이 이건되고 약 10여년이 지난 1903년에 제향인물 송시열의 후손 송병선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서원의 이건 사유, 이건에 따른 사림의 논의과정, 입지 선정의 사유 등이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응도당은 서원 이건 당시에는 이건 기술력의 한계로 옮기지 못했다가 1971년에 원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현 위치로 이건하여 보존하고 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이건 시점이 90여년 가량 늦은 이유는 응도당의 규모가 매우 커서 1881년 당시 기술력으로 이건할 경우 유산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기중기 등의 현대식 장비가 도입된 후 1971년에 원형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이전이 이루어졌다.

1881년 현재의 장소로 돈암서원이 이건된 이후에도 서원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다. 1926년 서책과 판각을 보관하기 위해 장판각 건립, 1927년과 1956년에 양성당을 수리하였다. 돈암서원은 1993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재 보호법에 근거하여 보호․관리되고 있다. 돈암서원의 건축물 중 이건 시기가 늦어지기는 하였지만, 응도당은 동아시아 건축 이론을 예학 이념과 결합하여 완성한 건축물의 진정성을 인정받아 2008년에 보물로 지정되어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한층 높은 보존관리를 받고 있다.



Superb View
landscape
HUMAN 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