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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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은 1552년에 건립된, 한국의 두 번째 서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에 들판이 조성된 탁 트인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다. 남계서원에서는 전면에 위치한 남계까지 이어지는 들판을 감상할 수 있다. 남계서원은 경사지의 지형조건을 활용하여 제향-강학-교류와 유식이라는 서원의 배치 정형을 최초로 제시하여 한국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 형식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남계서원은 한국 서원의 운영과 건축배치의 전형을 구축한 서원으로 이후 건립되는 많은 서원들의 기준이 되었다. 남계서원은 순수한 민간인인 사림의 주도로 서원 건립 및 운영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원칙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자발적인 서원 재정 운영 사례로 창건부터 19세기까지 사림들의 기부내역과 관련된 장부인 󰡔부보록󰡕이 남아있다.

남계서원의 주향인물은 정여창(1450-1504)이다. 정여창은 함양 출신 사림으로 16세기 전반 중앙 정계에 관료로 진출한 인물이다. 그는 중앙 관료들의 관료주의적이고 훈구 중심적인 성향에 대해 성리학에 기반한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 활동을 하였다. 정여창의 정치활동은 이후 사림들의 정치 참여의 하나의 유형이 되었다. 이후 남계서원은 강익(1523-1567)과 정온(1569-1641)을 종향하였다. 이들은 성리학적 실천과 교육의 측면에서 함양을 대표하는 사림이자 남계서원 건립과 초기의 운영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남계서원은 16세기 후반 일본의 침입에 대해 경상남도의 의병활동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남계서원은 1595년 일본군에 의해 전소(全燒)되었으나, 전쟁이 종료된 후 1603년 곧바로 함양지역 사림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후 남계서원은 경상남도의 서원들과 사림 중심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까지 훼철되지 않은 경상남도 유일의 서원이다.

남계서원의 주요 건물은 다음과 같다. 제향시설은 사우, 전사청이 있다. 남계서원은 제향공간의 구성에서 세칸의 신문과 세칸의 사우, 그리고 제향 준비를 위한 전사청을 유기적으로 구획하여 이후 서원 제향 공간의 전형을 이루었다. 강학시설은 강당 명성당, 재사 양정재․보인재, 경판각이 있다. 우측 재사 앞에는 제향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놓여있다. 교류와 유식 시설로는 애련헌, 영매헌, 누각 풍영루, 연당이 있다. 풍영루는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누각의 건립은 이후 건립된 서원에서 보편화된 누각 건축물이 이후에 적용된 것이다. 누각 건립 이전에는 두 재사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루와 그 아래에 두 개의 연당이 유식 시설로 기능하였다.

남계서원은 다른 서원에 비해 건축 공간의 규모가 작다. 그러나 서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각 건축물의 배치형식까지 시원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은 남계서원이 가진 건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의 공간구성은 대표적으로 재사 공간이 1칸의 온돌방과 1칸의 누마루로 구성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남계서원 재사 공간의 누마루는 서원 강학공간에 교류와 유식공간을 조성한 초기의 사례를 보여준다.

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다. 1552년 강익의 주도하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함양 사림 30여 명이 참여하여 서원 건립이 추진되었다. 1561년에는 사우와 강당 명성당(明誠堂)이 완공되었다. 

기숙사인 동재 양정재(養正齋)와 서재 보인재(輔仁齋)를 1564년에 건립되었고, 그 아래에 한 쌍의 연당(蓮塘)을 만들어 서원의 외형을 갖추었다. 동재와 서재는 강당 쪽의 각 한 칸은 온돌방이고, 문루인 풍영루 쪽의 나머지 한 칸은 각각 애련헌(愛蓮軒), 영매헌(詠梅軒)이라고 이름 붙인 누마루로 되어 있다. 이처럼 실(室)과 헌(軒)이 하나의 건물에 같이 있는 것은 헌(軒)이 누(樓)건물로 나타나기 이전의 형식으로 교류와 유식시설로 기능하였다.

1566년에 ‘남계’로 사액되었다. 1569년에는 전사청을 제향공간 내에 건립하여 제향을 위한 완비된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계서원을 1605년에 다시 건립하고, 1606년 다시 사액이 되었다. 

1677년 정온(鄭蘊)을 종향(從享)하고, 1689년에는 서원 건립을 주도했던 강익을 종향하였다. 1779년 묘정비를 세우고, 1849년에 풍영루(風詠樓)를 건립하였다. 원래 남계서원의 정문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에 동·서재 전면 1칸이 누의 기능을 함께 했었지만 풍영루가 건립되면서 교류와 유식을 위한 누각과 강학을 위한 기숙사 재사가 구분되었다. 

건립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922년에 장판각(藏板閣)을 다시 건립하여 책판과 서적을 보관해왔다. 남계서원에 소장되었던 책판과 서적은 보존관리를 위해 현재 함양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09년에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정부로부터 문화재 보호법에 근거하여 보호·관리되고 있다. 2011년 풍영루를 수리하였고, 2016년 고직사를 개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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