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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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은 1590년에 건립된 서원이다.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원은 뒤편에 야산을 등지고 전면에 평야가 펼쳐진 평지에 입지하고 있다. 전면이 평야로 구성되어 있어 누마루 확연루에서 탁 트인 야경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필암서원의 건축 구조는 평지형 입지에 위치한 서원 건축 배치 형태의 창의적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필암서원의 배치 형식은 이후 건립되는 평지형 서원 배치의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필암서원은 장성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노비안, 양안 등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방식이 정립되는 단계를 보여준다. 재정 기반은 서원의 구성원과 함께 서원의 운영과 관련된 필수 요소이다. 필암서원에는 서원의 경제적 기반과 관련된 토지, 노비를 포함한 경제 운영 전반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있다. 관련 고문서에는 서원 소유 전답의 규모와 소출량, 노비 등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필암서원에는 노비의 명단과 계보도인 노비보가 현존하는데, 한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노비 족보로서 노비의 출신, 가족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필암서원의 주향인물은 김인후(1510-1560)이다. 김인후는 16세기 중반 성리학 이론을 도식화하여 성리학 이해의 진전을 가져왔다. 성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중앙 정계에서 왕실의 스승으로 활약하였다. 김인후는 관료―학자로서 사림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김인후의 활동은 지방사회의 교육을 주도하던 사림이 국가지도층의 교육을 전담한다는 점에서 사림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것을 나타낸다. 1786년에는 김인후의 제자인 양자징(1523-1594)이 종향되었다.

제향인물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은 필암서원이 전라남도의 사림과 서원을 주도하는 서원으로 자리잡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전라남도의 사림들은 의병을 결성하였고 필암서원은 저항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암서원은 남계서원과 마찬가지로 전쟁과정에서 1597년 전소(全燒)되었지만, 지역 사림들에 의해 1624년 재건됨으로써 서원의 기능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필암서원은 전라남도에서 19세기까지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유일한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다양한 인사들이 방문하고, 학문을 토론하는 현장이 되었다. 필암서원이 소장하고 있는 현판과 기문 등은 창건 이후로 지속적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방문한 증거로 남아있다. 필암서원이 소장하고 있는 16, 17, 18세기를 대표하는 명사들의 시문자료인 현판과 기문 등은 창건 이후로 지속적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방문한 증거로 남아있다. 강당과 누각의 현판은 돈암서원의 제향인물 2명이 작성한 것으로 서원 간의 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필암서원이 장성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필암서원은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제향시설은 사우 우동사와 전사청, 한장사가 있다. 강학시설은 강당 청절당과 재사 진덕재, 숭의재가 있으며, 도서관인 경장각과 장판각이 있다. 경장각의 현판은 정조가 직접 책을 내려주며 작성해준 것이다. 교류 및 유식시설로는 확연루가 있다. 평지형 서원이기 때문에 다른 건축물에서는 외부 경관을 감상하기 어렵고, 확연루에서만 전면의 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기타시설로 서원의 중심축 동측에는 서원의 지원을 위한 고직사가 있다. 

필암서원은 이전에 건립되었던 서원과 달리 평지에 입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원들이 경사지에 조성된 이유는 각 공간의 위계를 설정하여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평지에 입지한 필암서원에서는 이를 구현할 수가 없다. 이러한 지형적 제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필암서원은 강당과 동․서재가 사우를 일상적으로 바라보도록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서원의 강당은 대체로 입구 문루를 향하지만 필암서원의 강당은 입구를 등지고 있다. 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좌우로 시립한 동․서재를 사이에 두고 북향하여 공손하게 예를 표하는 강당을 지켜보는 사우는 의례적인 중심일 뿐 아니라 서원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자리하게 한 것이다. 필암서원의 배치 형식은 이후 건립되는 평지형 서원 배치의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사우 우동사 내부에는 제향인물의 사상을 나타내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시각적으로 제향인물의 가치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은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해 있다. 필암서원은 김인후의 절의와 학문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림들에 의해 1590년 창건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당시 의병활동의 주요거점이 되면서, 전쟁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1624년 장성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황룡면 필암리로 옮겨 다시 세웠다. 1659년에 ‘필암(筆巖)’으로 사액을 받았다. 1672년 3월에 현 위치로 다시 옮겨 건립하였다. 이때 객사를 옮겨 서원의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으로 삼고, 누각 확연루(廓然樓)를 건립하였다.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배하였고,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다. 

1844년 제향 제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사청(典祀廳)을 건립하고, 1886년에는 사우 우동사(祐東祠)를 보수하고, 고직사(庫直舍)를 신축하였다. 1887년에는 강당 청절당, 동·서재, 문루 확연루를 보수하였다. 근대 이후에도 서원 건축물들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졌는데 1941년 사당 재건, 해방 후 확연루·동재·서재·고직사 보수, 확연루 단청 등의 수리를 거쳤고, 1970년 서원 소장 목판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장판각을 건립하였다.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재 보호법에 근거하여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 하에 유지되고 있다. 1975년 필암서원 중요 문적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1990년대 들어 현재까지 내삼문 수리, 동·서재 수리, 청절당, 확연루 등을 수리하였다. 

1998년에는 서원 외부에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고, 2010년에는 서원 외부에 교육시설을 건립하여 필암서원과 연계된 교육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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